하루종일 우는 아기를 키우는 누군가를 위해...+(3)

" 아기가 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

  첫째딸 백설기의 육아글을 쓰다 보니, 여고 괴담도 아니고... "육아 괴담"이 되는것 같아서 멈칫하게 된다. 아직 아기를 낳지 않은 많은 예비 맘들에게 "안 자고, 안 먹고, 24시간 내내 울기만 하는 예민한 아기"에 대해 두려움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아기에 대해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해두면..미리 예방 접종을 맞은 것처럼 어떤 수퍼 베이비가 태어나도 더 무난하고 현명하게 육아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백설기를 낳고, 육아 휴직 없이 바로 직장에 복귀했다. 직장 동료들이 아기에 대해 물으면...

"아기가 좀 많이 우는 편이에요...."라고 간단히 얘기했다.

그러면 대부분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아기들은 다 울지! 안 울면 애기가 아니지."

" 아기가 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

"배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거나, 너무 덥거나, 아니면 방 습도를 체크해봐. 조치를 취해주면 안 울어!"


나는 공대생 마인드의 남편과 살면서, 아기가 우는 그 원인을 찾으려고 무진장 애썼다.

남편은 출근한 나 내신, 얼린 모유를 중탕해서 아기에게 먹이는 중대한 임무를 맡았는데.. 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그 날 발견한 절대 수유 각도에 대해 리서치 발표를 하곤 했다.

침대에 한쪽 발을 올리고, 무릎을 75도 정도 굽히고, 아기를 왼쪽 손으로 85도 정도 받치고, 오른손으로 젖병을 평행하고 올려줄 때, 아기가 안 울고 잘 받아 먹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심의 연구 발표를 보여줄때마다, 백설기는 아빠의 바람과는 달리 숨 넘어가게 울어 재끼면서, 아빠의 육아 의욕을 떨어뜨리곤 했다.

우리가 겨우겨우 발견한 일관성 있는 법칙은...

1) 무조건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한다. (실내에서는 무조건 울었다.)

2) 아기의 시선에서 보이는 것들이 계속 바뀌어야 한다. (절대 멈추면 안된다)

3) 새로운 자극을 계속 줘야 한다.

이러니, 우리는 눈이 오건 비가 오건 계속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돌아 다닐 수 밖에 없었는데..

차를 타고 가도 신호등에 멈추면 미친듯이 울었기 때문에, 그 추운 겨울 아이를 울리지 않기 위해 아기띠를 매고 관악산 근처를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그 당시 체력과 당분이 필수였기 때문에, 스타벅스 초코 프라프치노를 하나 들고 밤낮으로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식당에 가도 실내에서는 울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명이 애를 안고 밖에서 걷고 있는 동안, 다른 한명이 혼자 후르륵 식사를 마치고 교대해주곤 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는 정말 듣도 보지도 못한 "금요병"이 생겼는데... 주말에 온전히 아기를 돌봐야 한다는 감정적인 두려움과, 하루종일 아기를 안고 걸어야 한다는 육체적인 우울증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주중에 출근하는 시간이 유일하게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때는 동료들과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니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예상보다 빨리, 직장 어린이집에 아기를 맡기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직장 어린이 집이 아니었지만... 원장님께서 유기농 음식과, 사랑과 애정으로 아기를 돌봐주시는 곳이라서, 내가 10년동안 다니던 직장의 애기 엄마들이 모두 이 곳에 아기를 맡기게 되었고, 마치 직장 어린이집처럼 운영되는 특별한 곳이었다. 나는 결혼하기 전부터 그곳을 찜해 놓았었고, 드디어 그곳에 나의 아기를 데리고 가서 원장님과 마주하게 되었다.

젊었을 때, 수녀님이 되려고 했다는 원장님은 직장에서 오래전부터 듣던 것처럼 온화하신 분이었다. 우리는 솔직하게 아기가 많이 운다고 이실직고 했고, 원장 선생님은 역시 온화한 웃음을 띠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우는 것은 다 이유가 있지요. 그런데 첫 애를 키울때는 그게 안보일때가 많아요."

그랬다! 베테랑 원장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 주셨으면 했다. 그토록 나의 직장 동료들에게 칭송 받는 육아 전문가 원장 선생님께서,  왜 우리 아기는 하루 종일 우는지 찾아 주셨으면 했다.

그리고 정확히 2주 후....

백설기를 찾으러 갔을 때, 나는 원장 선생님 얼굴에서 "나의 금요병"  증상을 보고야 말았다.

"어머니!!! 백설기는요... 도무지 왜 우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그냥 이유 없이 계속 울어요. 이런 아기는 여기에 맡기시면 안돼요.  1대1로 봐도 안돼요!!"


그 다음날, 내가 직장에 갔을때..... 여기 저기서 웅성웅성거리며, 나를 위로해주던 직장 동료들...ㅠㅠ 그 천사 같은 온화한 원장 선생님을 버럭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벌써 나의 직장에 소문이 다 나있었다. 그들에게는 쇼킹한 뉴스였다. 얼마나 아기가 울었으면... 그 착한 원장 선생님을....

아마 그때 이후로 나는 더이상 육아 서적을 읽지 않았다.

꼭 마치,  아기가 우는 것은 엄마 탓으로 말하는 모든 책들은 다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순한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아기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백설기를 앉혀 놓고 아기 때 왜 그렇게 울었냐고 물었다. 

"엄마! 내가 그때 너무 아기라서 몰라서 그랬어~~ 미안해~~~~"

너무 쿨하게 사과하는 딸을 보며,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유 없이 우는 아기도 있다! 귀마개라도 끼고 버텨라! 아이에게 웃으면서 사과 받을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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