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자는 아기를 키우는 누군가를 위해...+(2)

산후 조리원 2주를 졸업할 때 조리원 원장님께서 안쓰러운 얼굴로 나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애기가 얼굴을 귀엽게 생겨가지고 성격이 장난 아니야~~"

나는 하하하 웃으며, '얼굴을 나 닮았는데 성격은 남편 닮았나봐.'라고 생각했다. ㅋㅋ


그리고 조리원에서 나와 집에서 잔 첫날밤!

난 야심차게 차트를 출력하고, 모유와 아기의 배변 활동을 기록할 색색깔이 동시에 나오는 볼펜을 준비했다. 나는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고 진단하는 "마음이 젋은 엄마"니까.... 빅데이터 쯤은 구축해서 아기의 건강과 심리를 분석할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노래도 부르고 촛점 책도 읽어주고, 불끄고 누워서 토닥 토닥 무한 반복했을까???

'우리 아기는 얼마쯤 지나면 통잠을 잘까?' 상상의 나래를 펴며 비몽사몽...

"엥~~"우는 소리에 놀라 밤중 수유하고, 또 다시 "엥~" 기저귀 갈고, "또 다시 "엥~" 무한 반복의 "엥엥엥~"

아기가 울 때마다, 하나씩 체크하고 색깔을 바꿔가며 테이블에 아기의 상태를 또박또박 기록했다.

그리고 스텐드의 조명을 다시 어둡게 만들기 전에 다시 "엥엥엥~" 밤새 내내 그 울음은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빅데이터 차트에 더이상 적을 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나의 차트를 던져 버렸다!!

      이건 반칙이야!!!!!!

첫날 아침.. 동틀 무렵 새벽 햇살에 나의 차트를 찾아서 보니, 적힌것까지 해서 21번 깨서 울었더라. 분명 신생아때는 3-4시간에 한번씩 깬다고 분명히 그랬는데... 운이 좋으면 통잠 자는 아기도 많다고 들었는데, 나도 5-6번 깨서 울면 사랑으로 다시 재워 줄 마음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

베이위스퍼 수면 교육은 임신하기 전부터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었다.

그런데!! 21번 깨서 우는 아기에 대해서는 어느 육아서에서도 본적이 없었다.


아기가 21번 깨서 울었다는것= 아기가 밤새 내내 안 잤다는 것 =부모도 한 숨 못 잤다는 것

고로 나와 남편도 좀비처럼 미소를 잃었다.

그 무렵,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은 친구가 전화로 애기가 낮과 밤이 바뀌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친구가 부러웠다. 적어도 낮에는 아기가 잔다는 뜻이니까....

우리집 아기는 밤에도 안 잤지만, 낮에도 안 잤다. 
그래 좋다. "신생아"라는 타이틀은 접어두고,  적어도 "휴먼"이라면... 둘 중 하나는 자야 하는게 세상의 이치 아닐까?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 아기는 "Human Being"이 아니라,  새로운 " Specie" 의 탄생인가?
낮에도 밤에도 안 자는 아기가 내 뱃속에서 태어나다니!!! 

"아기가 잘 안자요..." 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낮에 에너지 있게 놀아 주고, 낮잠 많이 재우지 말고, 많이 움직이게 해서 피곤하게 만들라고.

낮에 에버랜드 놀러온것처럼 뛰어다니며 놀려도.... 수영장에 퐁당 담가 하루종일 발차기를 시켜도...
안자는 애는 안잔다.
그냥 그렇게 태어난 새로운 " Specie"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워진다.

곰이 겨울철에 겨울잠을 자듯이...
낮에도 밤에도 안자는 아기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희박하지만 그 아이가 울집에 왔다는 것!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순간 마음에 여유가 찾아 왔다. 포기라고 쓰는게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남편과 나는 불침번처럼 3시간 씩 번갈아 가며 아기를 돌봤다.
둘 다 못 잘 수는 없었으니까, 3시간 당번제를 실시한 이후 그나마 좀 여유가 생겼던 것 같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잔인했던 좀비 육아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두돌 쯤 되었을 때던가?? 나는 울집의 그 특별한 Specie가 밤새 내내 3번 깨었다는 것을 깨닫고 기뻐했던 적이 있다. "여보! 우리가 해냈어! 어젯밤에 3번 밖에 안 깼어!"

그리고 지금, 그 특별한 아기가 만 11살이 되어 간다.
지금도 역시 잠이 없는 편이다. 재우려고 하면 "차라리 공부할게요"하는 어린이로 성장했다.

한국갈 때, 밤 비행기를 태우면서 시차적응을 위해, 자고 싶지 않으면 자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진짜 날밤 새더라. 그냥 밤 새고, 다음날 한국 스케줄 말똥말똥 다 소화하더라.

잠이 없는 아기를 키우는 누군가를 위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아기 때는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열살까지 키우고 보니,
"아이가 정말 체력이 좋다. 피곤해 하지 않는다. 컨디션이 늘 활기차다."

지치는 법이 없이 뛰어다니는 틴 에이저를 보며, 요즘 남편과 늘 걱정스레 하는 말이 있다.
"쟤 저러다가 고3때, 그동안 못 잔거 한번에 몰아서 자면 어쩌지?"

어서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후기 쓸 날을 기다려본다.
제목: "잠 안 잤자던 아기, 고등학생 수면 패턴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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